Study/심리학자

[벌허스 프레더릭 스키너] EP1. 생애 (+프로필)

윤_토피아 2021. 9.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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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쌤의 상담교실 홍쌤입니다.


오늘은 스키너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목차 ]
1. 스키너의 프로필
2. 스키너의 가족관계
3. 심리학의 길로 가기 전 스키너
4. 스키너의 중요업적






Skinner박스 들어보셨나요??
오늘 만나볼 인물은 Skinner박스를 만든 인물!! 스키너입니다.
스키너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지금부터 스키너의 삶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키너의 풀 네임은 벌허스 프레더릭 스키너입니다.
스키너는 미국 국적의 심리학자로 쥐를 이용한 학습실험이 유명하며, 인간행동을 자극-반응의 관계로 설명하려한 학자입니다.






2.
스키너의 가족관계

스키너의 가족관계를 간략하게 표현하면 그림과 같습니다.
스키너의 아버지 윌리암 스키너는 지역에서 좋은 평판을 받던 법률가였지만 비사교적이고 정직하여 정치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하였습니다.
스키너의 어머니인 그레이스 스키너는 아름답고 자애스러운 여자였으며, 가정에 충실하겠습니다.
두 살 반 아래인 남동생은 운동도 잘하고 친구들 사이에 인기도 높았지만 16세에 갑자기 사망하였습니다.
그 당시 스키너는 남동생의 죽음에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훗날 죄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스키너 가족의 가정교육은 크게 두 가지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스키너 가족의 종교교육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종교교육은 할머니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거짓말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벌 중심의 종교교육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종교교육은 스키너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하였고 종교를 회피하게 된 요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2~13세쯤에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벌 중심 종교교육에서 벗어나면서 조금씩 자유러워졌습니다.
그 당시 스키너는 신약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서 ‘보상이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부모의 교육방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스키너의 부모님께서는 벌보다는 적절한 보상과 간접적인 벌 경험하게 함으로써 사회규범 안에서 적절하게 행동하는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하길 바랬습니다.
스키너의 아버지께서는 스키너에게 시골감옥을 구경하게 하였으며, 어느 여름 방학에는 미국의 교정시설인 ‘싱싱’에서의 삶의 묘사하며 알려주는 강연에도 참여하게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교육은 간접적인 벌을 경험하게 하여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3.
심리학의 길로 가기 전 스키너

그렇다면 어떻게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요?

스키너는 어린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스키너는 친구의 충고에 따라 대도시인 뉴욕으로 옮겨가 Hamilton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스키너는 대학교에서 반항아로 불렸습니다.
학교와 교수를 공격하는 발언을 서슴치않았습니다.
스키너는 “그들은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너무나 많이 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러한 것들이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통 사람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그 반만큼도 알지 못한다.”는 발언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기고하고 잡지를 편집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으며, 문학가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스키너의 아버지는 그의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예술과 음악 그리고 문학에 대한 이해는 대학 교수들과, 고서관위들 그리고 선생들에게는 일반적으로 큰 재산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너의 빵에 버터를 발라주지 못할 것이다”는 현실적인 충고를 남겼습니다.
스키너는 문학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문학작품보다 과학서적을 많이 읽게 되었고 과학을 통해 인간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왓슨의 <행동주의>를 통해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스키너는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하버드 대학교와 콜럼비아 대학교 가운데 고민하다 해밀턴 교수의 조언을 듣고 하버드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4.
스키너의 중요업적

스키너의 주요 업적을 통해 스키너는 어떤 심리학을 추구하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비둘기 프로젝트입니다.
1944년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있을 당시 전쟁 수행을 돕고 싶었던 스키너는 폭탄을 유도할 비둘기들을 훈련시키는 극비 프로젝트를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연구에 몰두하여 비둘기들이 표적을 지속적으로 쫄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켰고 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비둘기들은 급히 하강하고, 전쟁으로 인한 큰 소음에도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였습니다.
스키너는 비둘기가 쥐들 보다 더 빨리 행동한다고 생각하였고 그 후로는 쥐를 실험에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스키너 박스입니다.
스키너 박스는 스키너의 실험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연구입니다.
이 실험은 “인간은 자의적인 존재인가? 그렇다면 파블로프의 조건화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의문점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스키너는 파블로프의 필수적인 조건화에서 더 나아가 자의적으로 조건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작동적 조건화에 대한 실험장치인 ‘스키너 박스’를 완성시켰습니다.
스키너 박스는 쥐가 ‘지렛대=음식’이라는 상관관계를 익히면 계속해서 지렛대를 누르게 된다는 원리를 밝혀낸 장치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딸에게도 적용했다는 말이 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아닙니다.






세 번째, 월든 투입니다.
‘월든 투’는 스키너가 지필한 공학 소설입니다. 한 군인이 전쟁터에서 금방 돌아와 자신의 친구와 옛교수들을 ‘월든 투’에 초대합니다. 아기들을 가족보다는 ‘월든 투’라는 공동체의 손에 키우게 하면서 교육이 어떤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알아보는 소설입니다.
처음에는 반응이 좋지 않았지만 후에 칭송과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스키너의 최고의 작품이 됩니다.

네 번째, 교수기계입니다.
스키너가 4학년인 자녀의 수학수업을 보던 중 행동의 형성에서는 최선의 반응은 즉각 강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교수기계를 만들게 됩니다.
교수기계는 학생들이 풀 문제들을 무작위로 제시하고 한 문제가 끝날 때마다 피드백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 기계는 새로운 행동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3년 동안 ‘프로그램 학습’을 개발하였습니다.
개발한 프로그램 학습은 주도면밀하게 배치한 순서에 따라 학생들이 여러 단계로 나뉜 교재에 반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스키너는 삶의 막바지에서도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고 1989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도 체력이 허용되는 한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죽기 10일 전에도 청중들 앞에서 미국심리학회 주최의 강연을 하였으면, 그 강연의 바탕이 된 논문은 그가 죽은 날 1990년 8월 18일 최종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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