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홍쌤의 상담교실 홍쌤입니다!
오늘의 심리학에서 만나볼 인물은 프로이트입니다.
심리학하면 가장 먼저 프로이트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프로이트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목차 ]
1. 프로이트의 프로필
2. 프로이트의 어린 시절
3. 의학의 길로 들어선 프로이트
4. 사랑꾼 프로이트
5. 심리학자 프로이트
1.
프로이트의 프로필

프로이트의 풀 네임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입니다.
지그문드 프로이트의 태어났을 때의 이름은 지기스문트 프로이트 였습니다.
프로이트가 22살에 자신의 이름을 지그문드 프로이트로 줄여 개명하였습니다.

1856년 5월 6일 체코의 모라비아에 있는 프라이부르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프로이트가 태어났습니다.
프로이트의 태어난 국가를 오스트리아라고 표현되어 있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태어난 곳은 오스트리아가 맞습니다. 하지만 현재 지금은 체코의 땅이기 때문에 저는 체코로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2.
프로이트의 어린 시절

프로이트의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모두 유대인이셨습니다.
프로이트의 인생에서 중요하게 봐야하는 부분이 프로이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입니다.
프로이트가 살았던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 세계 1차 대전, 세계2차대전을 겪고 경제 대공황까지 겪게 되면서 전 세계가 혼란 속에 빠져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심했었고, 프로이트는 유대인의 차별과 박해가 심한 이 시기에 유대인으로서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지금부터 나올 가계도는 보기 쉽게 간략하게 구성되었으며, 필요한 부분만 표현하였습니다.
프로이트는 아버지 ‘야곱 프로이트’와 어머니 ‘아말리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직물 상인이셨습니다.
프로이트는 3남 5녀 중 장남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이트 바로 밑의 동생 ‘율리우스’는 8개월 만에 죽었으며, 이 일을 계기로 프로이트를 키워주셨던 유모가 해고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갑작스럽게 가까운 두 사람과 이별을 맞이하게 됩니다.
프로이트가 이야기하는 무의식, 그 속에 동생 율리우스와 유모가 자리잡고 있지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프로이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차이는 20살입니다.
야곱프로이트가 40세 때 20살인 율리우스를 만난 것입니다.
이러한 나이차이는 복잡한 가족관계의 시작점입니다.

아버지 야곱프로이트는 사실 전 부인이 있었습니다.
전 부인과 야곱프로이트 사이에는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프로이트에게는 배다른 형제가 두 명 더 있었던 것이죠.
큰 이복형 ‘에마누엘’의 나이는 프로이트의 엄마보다 많았고, 작은 이복형 ‘필립’은 엄마와 동갑이었습니다.
에마누엘에게는 아들 ‘존’이 있었는데, 프로이트의 입장에서 보면 조카이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프로이트와 존은 나이차이가 얼마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친한 소꿉친구로 지냈습니다.
이러한 가족 속에서 프로이트는 인간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강한 의문과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프로이트는 동생 율리우스와 자신을 키워준 유모와 갑작스러운 두 번의 이별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가 20살 차이가 나면서 가족관계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어린시절 경험과 가정사는 프로이트가 인간을 보는 관점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3.
의학의 길로 들어선 프로이트

프로이트가 의학의 길로 들어선 몇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왜 의학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첫 번째, 괴테의 <자연론>에 영향을 받습니다.
프로이트는 칼 브륄 교수의 강연 중에 언급된 괴테의 <자연론>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연과 생명의 힘을 인간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뚜렷하게 나타내는 모습을 통해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두 번째,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프로이트는 유대인으로서의 현실을 생각해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자연과학에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유대인이 학자의 길을 걷는건 힘들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유대인으로서의 현실을 생각해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의과대학을 선택하게 됩니다.
세 번째,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습니다.
다윈든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해>라는 출판을 하였고 출판과 동시에 학계와 종교계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 이론을 통해 젊은 지식인들은 과학을 통해 진리를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프로이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4.
사랑꾼 프로이트

연구에 몰두하던 프로이트에게도 사랑하는 운명적인 여성이 나타납니다.
그 여성은 바로 마르타 베르나이스 입니다.
프로이트는 마르타 베르나이스와 만난지 3개월만에 약혼(1882.6.)을 하게 됩니다.
마르타 베르나이스와의 결혼을 꿈꿨지만 제정적인 부분을 충당하기에는 힘이 든 상황이었습니다.
마르타 베르나이스와의 결혼자금을 만들기 위해 프로이트는 실험실을 그만(1881.3.)두고 빈의 종합병원에서 의사로 일(1881.9.)하게 됩니다.
프로이트와 마르타 베르나이스가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에는 인생의 여러 굴곡을 거치게 됩니다.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별 진전이 없었고,코카인에 대한 연구마저 동료가 연구 성과를 빼앗아갔습니다.
실의에 빠져있던 프로이트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브뤼케교수입니다.
브뤼케교수는 프로이트에게 파리로 유학 갈 기회를 추천해주었습니다.
마르타와 만나는 동안 프로이트는 유학생활을 하게 되어 서로 떨어져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시간을 편지로 소통하였습니다.
프로이트는 마르타와 만난지 4년이 되어서야 결혼(1886.9.)을 하게 됩니다.
5.
심리학자 프로이트

대학생이던 프로이트는 브뤼케의 지도를 받으면서 동물의 신경을 연구를 하였습니다.
프로이트는 브뤼케가 몸소 실천한 과학적 엄밀성의 세 단계인 관찰, 발견, 이론 단계를 철저하게 지키며 연구하며,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해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마르타 베르나이스와의 결혼자금을 만들기 위해 프로이트는 실험실을 그만(1881.3.)두고 빈의 종합병원에서 의사로 일(1881.9.)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별 진전이 없었습니다.
코카인에 대한 연구마저 동료가 연구 성과를 빼앗아갔습니다.
실의에 빠져있던 프로이트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브뤼케교수입니다.
브뤼케교수는 프로이트에게 파리로 유학 갈 기회를 추천해주었고이 기회를 통해 프로이트는 가족과 마르타 베르나이스를 떠나 파리의 살페트리에르 병원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살페트리에르 병원에는 명성이 자자한 장 마르탱 샤르코 교수가 정신질환자들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샤르코 박사와 함께 일을 하며 히스테리를 치료하는 샤르코 박사의 최면술을 보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최면술과 친구인 브로이어가 치료하던 안나O를 보며 무의식을 발견하게 되었고 히스트레의 원인이 정신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샤르코 박사는 히스테리의 원인이 신체에 있다고 생각하였고 프로이트는 샤르코 박사와 상반된 주장을 가지게 됩니다.
이 시기에 프로이트는 결혼을 하였고, 결혼과 동시에 프로이트에게 또 다시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그 당시 사회의 분위기는 가부장적인 모습이 만연했고 히스테리는 여성의 것으로 생각되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남성에게도 히스테리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고 이러한 주장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였고 끝내 빈 대학교에서 프로이트의 강사 자격을 박탈(1886.10.13)시켰습니다.
즉, 프로이트는 빈의 의료계에서 추방을 당한 것입니다.

그 시기에 프로이트의 주장을 이해해주는 플리에스가 등장합니다.
프로이트와 플리에스는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오랫동안 서로의 연구를 이야기를 나누는 좋은 친구관계를 맺게 됩니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는 정신분석학이 탄생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여성 문제에 몰두하고 있던 두 사람은 정신분석학을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편지는 1950년 <정신분석학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프로이트의 환자 중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엠미 폰 N'이라는 여성 환자가 있었습니다.
엠미 폰 N은 최면이 걸리지 않아 최면술로 치료를 해나가기 힘들었고 프로이트는 최면없이 대화를 통해 히스테리의 원인을 파악해보기로 합니다.
엠미 폰 N과의 치료 과정에서 '자유연상'이라는 치료법을 발견해내었고,
이를 통해 무의식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꿈에 프로이트의 환자였던 '엠마 에크슈타인'이 나오면서 꿈이 무의식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프로이트의 부친이 사망하였습니다.
충격에 빠져있던 프로이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됩니다.
복잡한 가족 관계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던 자신의 모습과 아버지가 없으면 자신이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토대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일반적인 남아에게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견하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치료 사례와 자신의 정신 분석을 통해 얻은 이론을 1899년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바라보았기 떄문에 인간의 행동에 무의식의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비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02년부터 몇몇 젊은 의사들이 정신분석학을 배우고 실천하고 전파시키면서 프로이트의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점점 더 많이 알려졌고, 많은 학자들이 찾아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융과 아들러도 프로이트를 찾아온 학자들였습니다.

프로이트가 예순 살이 되었을 때,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그 시기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고 지속한 결과 '죽음의 본능'에 대한 논문을 완성하였습니다.
1923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5년이 되던 해에 프로이트는 구강암에 걸렸고 투병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1938년,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당시 사람들은 유대인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유대인이였던 프로이트는 핍박과 차별로 인해 그 해 6월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빈을 떠나 런던으로 향했습니다.
1939년 9월 23일, 그는 미완성된 '정신 분석학 개관'원고를 남겨 둔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로이트는 유대인으로 태어나 많은 핍박과 차별을 받으며 자라왔지만죽는 날까지 인간의 정신에 대해 깊이 연구하며 '정신분석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정신을 탐구하는 수많은 학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물하였고, 심리학의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열게 해주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연구와 그의 업적에 존경을 표합니다.
프로이트의 이별경험과 복잡한 가족 관계가 프로이트의 이론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함께 생각해보며, 프로이트의 이론을 공부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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